백희엽 회장 명동 백할머니 자녀 아들 :: 별 탈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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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희엽 회장 명동 백할머니 자녀 아들
    카테고리 없음 2024. 6. 3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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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희엽 회장은 1916년 평안남도 평양의 부유한 지주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명동 백할머니 하면 바로 이분을 말하는 거에요. 백씨 가문은 평양에서 손꼽히는 명문 집안이었으며, 백희엽 회장은 그 가문의 장녀로 태어나 넉넉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학업에도 뛰어났던 백희엽 회장은 1940년 일본 도쿄에 있는 짓센여자전문학교(実践女子専門学校)를 졸업했습니다. 당시 여성의 해외 유학은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백희엽 회장은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이를 이뤄냈다고 하네요.

    짓센여자전문학교는 일본에서 가장 명문있는 여자 대학 중 하나였으며, 백희엽 회장은 이곳에서 경제학과 금융학을 전공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일본에서 한동안 머물며 현지 경제와 금융 시장을 면밀히 연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1945년 광복 이후 백희엽 회장의 가족은 북한에서 월남하게 됩니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백희엽 회장은 남편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는데요.

    피난 온 부산에서 백희엽 회장은 생계를 위해 양말 장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힘든 일이었지만, 백희엽 회장은 뛰어난 사업 감각과 노력으로 점차 성공적인 사업가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던 중 백희엽 회장은 친척의 권유로 일본제 페니실린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사업을 시작합니다. 당시 한국은 6.25 전쟁으로 인해 의약품이 부족했으며, 일본제 페니실린은 품질이 좋고 가격도 저렴한 상황이었습니다. 백희엽 회장의 예측은 적중했고, 그녀는 이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둡니다.


    이후 백희엽 회장은 대구로 건너가 군복 등 군수품 장사를 하여 더욱 큰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당시 백희엽 회장의 사촌 백선엽 장군은 대한민국 국군의 장성급 장교였기 때문에, 군수품 조달에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고 합니다.

    1950년대 초 백희엽 회장은 서울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투자 사업을 시작합니다. 당시 한국 경제는 6.25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어 있었지만, 백희엽 회장은 날카로운 시각으로 투자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그녀는 조흥은행에 예치했던 돈을 기반으로 국채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발행된 건국국채는 시장 상황이 불안했지만, 백희엽 회장은 낮은 가격에 매수하여 만기상환을 통해 큰 수익을 올렸습니다.

    백희엽 회장의 성공적인 국채 투자는 그녀의 투자 철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녀는 단기적인 수익보다는 장기적인 가치를 중요시했으며, 꼼꼼한 분석과 신중한 판단을 통해 투자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 명동의 전설, 백희엽 회장 센스 넘치는 투자로 거부를 이룬 여성 기업인

     

    당시 한국은 경제 성장과 더불어 해외 건설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백희엽 회장은 뛰어난 시각으로 이러한 시장 트렌드를 포착하고, 해외 건설 기업들의 주식에 집중 투자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동아건설의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했는데, 동아건설은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습니다. 그 결과 백희엽 회장은 이 투자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명동의 '큰손'으로 불리며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백희엽 회장의 투자 성공 사례는 그녀의 뛰어난 투자 철학과 날카로운 시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녀는 단기적인 수익보다는 장기적인 가치를 중요시했으며, 꼼꼼한 분석과 신중한 판단을 통해 투자 결정을 내렸습니다. 또한, 경제 상황과 시장 트렌드를 면밀히 파악하여 적절한 시점에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수백억 원의 자산을 가진 거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명동 백희엽 회장은 돈을 쓰거나 화려한 생활을 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명동 백할머니는 항상 검소한 옷을 입고 소박한 생활 방식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또한, 명동 백할머니는 자신의 재산을 아끼지 않고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미래에셋그룹의 박현주 회장은 백희엽 회장의 제자로서 그의 밑에서 가치 투자의 안목을 배웠다고 전해지는데요. 박현주 회장은 "백 할머니는 정석 투자만 하는 분이었다.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고수했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백희엽 회장은 1970년대까지 증권거래소와 증권회사들이 모두 명동에 있었기 때문에, 주식 투자에 거액을 동원할 수 있는 개인 투자자를 '명동 사채 시장의 큰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녀는 또한 우풍상호신용금고 설립 등을 통해 사회 기여에도 힘썼습니다.

    백희엽 회장은 센스 넘치는 투자로 거부를 이룬 여성 기업인이자, 한국 근대 금융사의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녀의 검소한 삶과 뛰어난 투자 철학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백희엽 회장, 명동 백할머니의 삶은 웹소설 '증권가 큰손 백 할머니'의 모델이 되기도 했으며, 영화 '마스터'에서는 배우 박정자가 그의 역할을 맡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먕동 백희엽 회장 가족관계는 나무위키에 아래와 같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1940년대 말에 조선일보의 편집국장을 지낸 박용학을 남편으로 두었다. 6.25 전쟁에 참전한 백선엽, 백인엽과는 사촌 관계이다. 백희엽 아들 박의송은 우풍상호신용금고의 사장으로 재직했으며, 자녀 중 삼남 박의철은 로얄관광의 대주주였다. 큰사위는 박인용 영동세브란스 병원장, 작은사위는 이운형 부산파이프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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